인공위성도, 나침반도 없던 기원전 240년 무렵,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이었던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기원전 276~194경)는 지면 위에 꽂아 둔 단순한 수직 막대기 하나로 거대한 지구의 둘레를 계산해 냈습니다. 그가 사용한 도구는 거창한 천문 관측 장비가 아니라, 하지 정오에 생긴 그림자의 각도(7.2도)와 두 도시 사이의 실측 거리(약 5,000스타디온), 그리고 유클리드 기하학의 엇각 원리뿐이었습니다.
계산의 뼈대는 간단합니다. 두 도시에서 본 태양의 방향 차이가 7.2도라면 지구 한 바퀴의 50분의 1입니다. 도시 사이 거리를 5,000스타디온으로 놓으면 둘레는 25만 스타디온이 됩니다. 다만 스타디온을 몇 미터로 환산하느냐에 따라 약 39,375~46,250km가 되므로, 어느 환산에서도 오차가 몇 퍼센트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관측 및 계산 요소 | 남쪽 도시: 시에네 (현 아스완) | 북쪽 도시: 알렉산드리아 | 기하학적 환산 및 최종 도출 |
|---|---|---|---|
| 하지 정오의 태양 고도 | 머리 바로 위 천정(Zenith, 고도 90°) | 천정에서 남쪽으로 7.2° 기울어짐 | 두 도시 사이의 위도 중심각 = 7.2° |
| 그림자의 발생 여부 | 깊은 우물 바닥까지 직사광 도달 (그림자 0) | 막대(스카페)에 길이의 1/50에 해당하는 그림자 발생 | 원 둘레(360°) 대비 비율 = 1/50 |
| 도시 간 거리 측정 | 보행 측량사(베마티스테스) 및 상단 실측 거리: 약 5,000스타디온 | 지구 전체 둘레 = 5,000 × 50 = 250,000스타디온 | |
| 현대 단위 환산 비교 | 이집트 스타디온(157.5m) 적용 시 39,375km (현대 실측값 40,007km 대비 오차 약 1.6%) | ||
시에네의 우물과 알렉산드리아의 막대: 7.2도의 발견
에라토스테네스는 도서관의 파피루스 기록을 조사하던 중 흥미로운 지리적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나일강 상류 남쪽에 위치한 시에네(Syene, 현재의 아스완)에서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인 하지(Summer Solstice) 정오가 되면 깊은 우물의 바닥까지 햇빛이 닿아 물면에 태양이 비치며, 수직으로 세운 기둥 아래에 그림자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는 기록이었습니다. 이는 태양이 지표면과 정확히 직각을 이루는 천정(머리 바로 위)에 위치함을 의미했습니다.
반면 시에네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같은 날 하지 정오에도 기둥 아래에 분명한 그림자가 생겼습니다. 만약 지구가 평평하다면, 같은 시각 같은 태양 아래에서 두 도시 모두 그림자가 생기지 않거나 똑같은 길이의 그림자가 생겨야 마땅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태양은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 광선은 완벽히 평행하다'는 가정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구가 둥근 구형이라면, 표면이 휘어져 있기 때문에 북쪽 도시에서는 햇빛이 지표면과 이루는 각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반구형 해시계인 '스카페(Scaphe)'와 수직 막대(그노몬)를 설치하고 하지 정오에 그림자의 길이를 정밀하게 측정했습니다. 기둥 끝과 그림자 끝이 이루는 각도는 정확히 원 한 바퀴(360도)의 50분의 1에 해당하는 7.2도(1/50 원주)였습니다.
평행선과 엇각: 중심각을 알아낸 기하학의 마법
알렉산드리아에서 측정한 7.2도는 단순한 그림자의 각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유클리드의 평행선 기하학을 끌어들였습니다. 평행한 두 직선이 하나의 직선과 만날 때 생기는 '엇각(Alternate interior angles)'의 크기는 서로 같다는 법칙이었습니다.
시에네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햇빛 연장선은 지구 중심을 통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리아에 세운 수직 막대의 연장선 역시 지구 중심을 향합니다. 햇빛이 서로 평행하다면, 알렉산드리아 막대의 그림자가 만든 각도(7.2도)는 곧 지구 중심에서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두 도시가 이루는 중심각(Central angle)과 정확히 같습니다.
즉, 두 도시 사이의 호(Arc)의 거리는 지구 전체 둘레의 50분의 1이라는 수학적 등식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단 하나, 두 도시 사이의 실제 물리적 거리를 알아내는 것뿐이었습니다.
낙타의 걸음걸이와 베마티스테스: 5,000스타디온의 측정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정기적인 범람으로 농경지의 경계가 사라질 때마다 땅을 다시 측량해야 했기 때문에 측량술이 고도로 발달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일정한 보폭으로 걸으며 거리를 전문적으로 측정하는 측량 기술자인 '베마티스테스(Bematist)'들이 존재했습니다.
두 도시 사이 거리를 어떻게 확보했는지는 후대의 설명과 추정이 섞여 있습니다. 왕실 측량 자료를 이용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낙타의 이동 날짜를 직접 취합했다는 장면까지 확인된 사실처럼 재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원저가 전하지 않는 만큼 여기서는 후대에 전해진 기하학적 계산을 설명합니다.
지구 둘레 = 5,000 스타디온 × 50 = 250,000 스타디온
후대 기록(클레오메데스의 천문학 서적 등)에 따르면, 에라토스테네스는 60분법 계산의 편의를 위해 이 수치를 60으로 나누어떨어지도록 약간 보정하여 252,000스타디온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스타디온의 미스터리: 현대 환산값과 오차의 진실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이 오늘날 얼마나 정확했는가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쟁점은 '1스타디온이 과연 몇 미터인가'입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스타디온 단위가 혼용되었기 때문입니다.
- 이집트/알렉산드리아 스타디온 (1스타디온 ≈ 157.5m): 고대 이집트 왕실 측량 단위로 환산할 경우, 250,000스타디온은 약 39,375km가 됩니다. 현대 인공위성이 측정한 지구 자오선 둘레(40,007km)와 비교할 때 오차는 불과 1.6%에 불과합니다.
- 올림피아/아티카 스타디온 (1스타디온 ≈ 185m): 그리스 표준 육상 경기장 길이로 환산할 경우 약 46,250km로, 오차는 약 15% 수준으로 커집니다.
물론 에라토스테네스의 관측에는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몇 가지 오차 요인이 존재했습니다.
- 경도의 불일치: 알렉산드리아(동경 29.9°)와 시에네(동경 32.9°)는 완벽하게 같은 남북 자오선 상에 있지 않고 약 3도 정도 어긋나 있었습니다.
- 위도의 불일치: 시에네는 북위 24° 5′에 위치하여, 당시의 북회귀선(북위 23° 43′)보다 약간 북쪽에 있어 하지 정오에도 아주 미세한 각도가 존재했습니다.
- 지표 경로의 곡선: 나일강을 따라 이동하는 여행 경로는 완벽한 직선이 아니었습니다.
이 계산의 매력은 정답에 얼마나 가까웠느냐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햇빛이 거의 평행하다는 가정, 도시 사이의 거리, 지표가 굽어 있다는 생각을 연결하면 눈앞의 그림자로 지구 크기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시에네의 위치와 두 도시의 경도 차이, 거리 단위의 불확실성은 결과를 평가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던진 7.2도의 질문은 중세 암흑기를 거쳐 15세기 대항해시대로 이어졌으며, 인류가 지구의 한계를 넘어 대양과 우주로 시야를 넓히는 가장 위대한 첫 번째 기하학적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자료 근거
- 클레오메데스(Cleomedes) 『천체의 원환 운동에 관하여(De motu circulari corporum caelestium)』 제1권 10장 — 에라토스테네스의 시에네-알렉산드리아 7.2도 그림자 측정 및 250,000스타디온 지구 둘레 계산 고대 1차 기록.
- 스트라본(Strabo) 『지리학(Geographica)』 제2권 및 제17권 —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의 지리적 위치, 베마티스테스 측량 기록 및 에라토스테네스 인용.
- NASA Goddard Space Flight Center — 『The Round Earth and Christopher Columbus』: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기하학적 유도 및 고대 천문학 분석.
-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MacTutor 수학사 아카이브 — 『Eratosthenes of Cyrene』: 고대 스타디온 단위 환산(157.5m vs 185m)과 측정 오차 분석.
- Dutka, Jacques (1993) 『Eratosthenes' Measurement of the Earth Reconsidered』 — Archive for History of Exact Sciences, Vol. 46: 252,000스타디온 전승 및 고대 측량 정확도 과학사 논문.